연합뉴스의 오만과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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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독료를 현실화해 달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도대체 구독료 올리는데 꼭 법까지 만들어야 합니까? 논리가 너무 빈약해요. 이래 가지고 어떻게 법안을 통과시키겠습니까?”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3월12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는 심각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한 회사를 살리는 방법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해마다 엄청난 적자를 내고 그 적자를 벗어날 방법이 없는 회사가 있다. 그 회사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회사고 절대 망해서는 안될 회사라면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세금으로 그 회사를 먹여 살려야 할까.

연합뉴스가 바로 그 문제의 회사다. 연합뉴스는 지난해에도 적자를 냈다. 지난해 매출액은 627억원, 영업손실은 62억원에 이른다. 그나마 월드컵 취재 지원 명목으로 받은 48억원의 국고 보조금 덕분에 당기순손실은 5억원에 그쳤다. 그렇게 그럭저럭 지난해는 버텼지만 2000년과 2001년만 해도 무려 65억원과 6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올해도 상황은 결코 좋지 못하다.

연합뉴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통신사다. 통신사는 뉴스를 만들어 언론사에 파는 뉴스 도매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하면 신문이나 방송은 뉴스 소매상이 된다. 통신사는 급변하는 현장을 발빠르게 따라잡으면서 다른 언론사의 1차 취재를 대신해주기도 하고 지방이나 해외 등 다른 언론사의 취재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뛰어들어 뉴스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는 미국의 AP와 UPI, 영국의 로이터, 프랑스의 AFP,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등이 있다.

연합뉴스는 1980년 전두환 군사정부의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합동통신과 동양통신 등 다섯개 통신사가 통합돼 만들어졌다. KBS와 MBC가 각각 전체 주식의 42.4%와 32.2%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KBS와 MBC가 국영과 공영방송이니 연합뉴스의 최대주주는 사실상 정부인 셈이다.

그런데 연합뉴스가 해마다 적자를 내는 이유는 뭘까. 연합뉴스의 매출은 크게 전재료 수입과 통신 수입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 전체 매출의 41.4%와 41.8%를 차지한다. 전재료 수입은 말 그대로 언론사에 뉴스를 팔아서 받는 저작권료고 통신 수입은 기업이나 정부 부처에 뉴스를 보내주고 받는 구독료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31개 중앙 일간지와 40개 지방 일간지, 9개 방송사와 전재 계약을 맺고 있다. 종합일간지 기준으로 전재료는 월 5700만원이다. 굉장히 비싸보이지만 연합뉴스의 덩치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합뉴스가 첫 출범하던 지난 1981년에 전재료는 월 3500만원이었다. 20년이 넘도록 사실상 독점 체제를 이어왔으면서도 전재료는 거의 올리지 못한 셈이다. 오히려 언론사들은 툭하면 전재료를 깎아달라고 아우성이다. SBS는 한때 전재료를 깎아주지 않으면 아예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맞서기도 했다.
SBS는 한해 전재료로만 21억원을 내고 있다. SBS 뿐만 아니다. 중앙일간지 총무 협의회는 한때 전재료 지급을 미루면서 전재료 인하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뉴스는 결국 정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구독료를 올려주지 않는 이상 매출을 늘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연합뉴스사 및 연합뉴스위원회 법안’을 놓고 한바탕 논란이 빚어졌다. 연합뉴스의 사활이 달린 법안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습니까. 정부에 손을 벌리기 전에 자구 계획은 세워봤습니까.” (이윤성 한나라당 의원)
“정부가 돈을 대주는 통신사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과 중국의 신화사 밖에 없습니다. 공기업도 민영화하는 마당에 사기업에 정부가 돈을 대준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정범구 민주당 의원)

연합뉴스의 주장은 크게 다음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연합뉴스에 국가기간 통신사의 지위를 부여해달라. 둘째, 정부와 연간 구독료 약정을 체결해달라. 셋째, 최대주주로 연합뉴스위원회를 만들어달라.

그러나 과연 국가가 나서서 언론사를 지원하는 일이 바람직할까. 연합뉴스는 우리나라의 정보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의 통신사들과 당당하게 겨룰 수 있을만큼 튼튼한 통신사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정찬 연합뉴스 부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사 한줄에 수십조원이 왔다갔다 하고 한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는 마당에 외국 언론사들에 맞서 싸울 언론사는 우리나라에 연합뉴스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가 나서서 연합뉴스를 국가기간 통신사로 키워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정보 주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 통신사들은 연합뉴스와 비교도 안될만큼 막강한 취재력과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전체 직원 1만9081명에, 기자가 2260명, 해외 특파원이 1천명에 이른다. 한해 매출도 6조8300억원에 이른다. 이들이 기사를 쓰면 전세계 언론사가 앞다투어 받아쓰고 이들의 기사는 곧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비해 연합뉴스는 전체 직원 647명에 기자가 425명, 해외 특파원이 20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해 매출은 겨우 627억원, 그것도 해마다 적자를 내고 있다.

문제는 국회의원들도 지적하는 것처럼 정부가 지원을 해주기만 하면 연합뉴스가 과연 로이터통신 같은 세계적인 통신사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는데 있다. 북한이나 중국은 예외로 하고 세계 어디에도 정부의 지원으로 큰 통신사는 없지 않은가.

연합뉴스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2000년말 기준으로 연합뉴스의 직원은 정규직과 계약직을 합쳐 647명이다. 그해 연합뉴스가 지출한 인건비는 모두 358억원, 전체 매출의 54.4%에 이른다. 1인당 평균 인건비는 5533만원이다. 우리나라 언론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기업을 통털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합뉴스는 또 전체 직원 가운데 차장급 평균 42세 이상이 49.3%를 차지한다. 지난 1981년 언론 통폐합 조치 이후로 여러 통신사들의 간부들을 그대로 모아놓기만 했을뿐 구조조정을 치르지 않아 인사 적체가 갈수록 심각해진 탓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일하지 않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경쟁력은 떨어지고 인건비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소비자들에게 버림을 받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연합뉴스가 내세우는 정보 주권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회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과연 경쟁력을 갖추게 될까. 당장 자금 문제야 풀린다고 하지만 멀리 내다보면 오히려 연합뉴스를 온실 안의 화초로 만들어 자생력을 꺾게 되지 않을까. 연합뉴스는 이에 대해 명확한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의 한계는 20년이 넘도록 이어져온 독점에서 비롯한다. 뚜렷한 경쟁자 없이 안정적인 매출 기반에 너무 의존했던 탓이다. 과거와 달리 우리나라 언론 시장에서 통신사의 역할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과잉 경쟁으로 치닫는 언론사들은 이제 직접 취재인력을 보강하고 연합뉴스의 영역까지 파고 들고 있다. 연합뉴스는 차별화된 뉴스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오히려 요즘은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매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이데일리나 머니투데이가 통신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들은 아무런 정부 지원도 받지 않는다. 이래저래 덩치만 큰 속빈 강정, 연합뉴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합뉴스를 국가기간 통신사로 만들고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구독료를 지급하겠다는 이 법안은 결국 어떻게든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은 누구도 언론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국회의원들은 선뜻 연합뉴스의 허술한 논리를 반박하지 못한다.
정부 부처 공보실에 가면 어디서나 쉽게 연합뉴스 터미널을 찾을 수 있다.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연합뉴스 터미널은 한대 구독료가 월 300만원에 이른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공짜로 볼 수 있는 연합뉴스를 정부는 터무니 없이 비싼 구독료를 내면서 보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내년부터는 월 400만원으로 가격이 껑충 뛴다. 연합뉴스는 이번 법안과 별개로 내년부터 정부 구독료를 연간 79억원 늘리는데 정부와 합의를 봤다.

시장 경제의 원리는 연합뉴스에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어디에도 없는 법을 만들어서 쓰러져 가는 연합뉴스를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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